1.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쥴리엣 영화관

어렸을 적, 저는 장난감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집에서 장난감을 붙잡고 꼬박 하루를 보내곤 했죠. 그래서 그런지 선물을 받을 때도 항상 장난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몇 번째 생일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언젠가 생일날 삼촌으로부터 커다란 박스를 받았습니다. 포장을 뜯어보니 이게 웬걸, 난생 처음 보는 글자가 적힌 박스였습니다. 나중에 커서 알고 보니 삼촌이 일본 출장을 다녀오면서 사온 장난감이었습니다. 웬만한 장난감을 다 갖고 있을 조카를 위해 한국에는 없는(확실하지는 않지만) 장난감을 사 오신 거였죠.

갑자기 웬 장난감 이야기냐 하실 겁니다. 이번에 제가 본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내용은 큰 줄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한 번 제 경험으로 운을 띄어봤습니다.

형편 없는 필력 때문에 아직까지 감을 못 잡으신 분들을 위해 설명 드리자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약을 밀수해 파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밀수는 불법입니다. 그리고 이 남자가 밀수를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론 우드루프는 블루칼라 전기 기술자로, 일을 하지 않을 때면 술, 마약, 로데오, 여자, 돈내기로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어느 날 우드루프는 사고로 병원으로 실려 오게 됩니다. 그리고 깨어난 우드루프에게 전해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

“저희가 우드루프 씨의 혈액을 검사해봤는데, HIV 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앞으로 30일 남았다는 믿기 힘든 사실을 애써 부정하며 병원을 도망치듯이 빠져나온 우드루프는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일부러 더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평소 몸이 안 좋아진 걸 느끼고 있었던지라, 결국 도서관에서 자료를 검색하며 에이즈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고, 자신이 빼도 박도 못하게 에이즈 걸렸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직 임상실험 단계 중인 신약 AZT가 있다는 것을 알고 뒷돈을 줘가며 몰래 복용하지만 결국 우드루프는 쓰러지고 맙니다.

천만다행으로 살아난 론은 자신의 옆 침대에 누워있던 레이온을 만나게 됩니다. 쾌활한 게이 레이온에게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다시 병원을 빠져나오는 론. 론은 자신에게 약을 빼돌려 주던 간호사가 알려준 의사를 찾아갑니다.

멕시코에서 만난 의사는 무면허였지만 론에게 진실을 알려줍니다.

“AZT는 정상적인 세포까지 파괴시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미국에서는 AZT를 만든 제약회사가 FDA에 로비를 했기 때문에 다른 약물이 정식으로 허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론은 이 약들을 미국에서 팔기로 결심합니다.

허가받지 않은 약을 갖은 꼼수를 부려서 반입시키고 병원에서 만났던 게이 레이온을 판매책으로 삼아 약장사를 하는 론. 하지만 직접 뛰어다니면서 장사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는지 새로운 판매방법을 생각해냅니다.

바로 ‘달라스 구매자 클럽’(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Dallas buyers club)! 월 400달러만 내면 제한 없이 약을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하면서 그들은 돈방석에 앉게 됩니다.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설명하겠습니다. 극장에서 보고 싶으신 분도 계실 테니까요.

제가 이 영화에서 크게 눈여겨본 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 두 번째는 주인공 론 우드루프의 변화, 마지막은 FDA

우선 매튜 맥커너히, 정말이지 연기력이 장난 아니게 늘었습니다. 이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아, 디카프리오는 이번에도 안 됐구나.’하며 아쉬움을 삼키기만 했을 뿐 수상자가 누구인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사하라’에서 페넬로페 크루즈와 호흡을 맞췄었고, ‘남자친구에게 10일 만에 차이는 방법’ 등 로맨스 영화에도 여러분 출연한 배우였습니다. 그때도 이 배우를 알기는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둘 정도로 연기력이 좋은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성장을 하다니. 마치 삼국지에서 유, 관, 장 삼형제를 위시한 주인공 세대가 다 죽고 나자, 그 밑에서 부장을 하던 요화, 장익, 왕평이 주력으로 떠오른 걸 보는 기분? 알고 보니 ‘머드’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줬더군요. 아마 남우주연상이라는 자리에 도달하기 까지 많은 노력을 했을 겁니다. 다음에 개봉하는 ‘인터스텔라’에서도 주연을 맡았던데 정말 기대가 됩니다.

주연 이야기를 했으니 맥커너히가 맡았던 배역인 론 우드루프도 빼놓을 수 없죠. 맥커너히가 20㎏을 감량하면서 혼신의 연기를 한 만큼(메소드 연기라고 하더군요.) 스크린 안의 론 우드루프의 캐릭터도 절절한 드라마를 보여줍니다.

당시 에이즈와 동성애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당연시 여겨지던 세상에서 우드루프는 남들과 다를 것 없이 살던 사람입니다. 좀 다른 게 있다면 엄청 말랐음에도 로데오를 즐겨하고, 술, 마약, 담배, 여자를 엄청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런 방탕한 생활 끝에 에이즈에 걸렸고, 이를 고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씁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약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자신이 직접 약을 밀수해서 팔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동성애자들을 고객으로, 비즈니스 파트너로 삼게 됩니다. 코로 마약가루를 흡입하고, 물 대신 술을 마시던 양반이 살기 위해서 술과 마약을 끊고 식품성분표를 꼼꼼히 분석하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웃기면서도 씁쓸했습니다. 진즉에 정신 차렸다면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에이즈에 걸리고 정신을 차렸으니 이런 유머가 또 있을까요.

밀수를 하면서 동시에 달라스 구매자 클럽을 운영하다보니, 우드루프에게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병도 치료하고, 돈도 벌 겸 시작했던 일은 어느새 동성애자들을 위한 일이 되었고, 세관에서 계속 약을 뺏기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한 소송은 FDA의 부당한 처사를 고발하는 투쟁이 되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레이온이 죽을 것을 직감하자 그에게 처음으로 악수와 따뜻한 포옹을 해주고, 레이온이 죽었을 때는 그에게 AZT를 투영한 의사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난동을 피웁니다.

하, 정말이지 이야기 전개상 그렇게 변할 거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절 감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포스터에서부터 거북이 목을 쭉 빼 내밀고 촌스러운 복장을 한 채 껌을 씹는 듯 질겅질겅한 발음을 내뱉는 방탕한 사나이가 이렇게까지 변하다니, 그리고 그 과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영화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FDA, 제약회사, 의사의 관계입니다. 딱히 안타고니스트가 없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방해하는 세력… 쯤 되겠네요. 대략적인 관계를 설명하자면

1. 제약회사에서 AZT 발명. FDA에게 로비를 하고, 병원에는 임상실험 의뢰

2. 의사 측에서 무리한 임상실험 강행

3. FDA는 AZT를 인가하고 다른 약에 대한 인가를 미룸.

이렇습니다.

어느 정부 부처나 다 그래야하지만 제일 국민을 신경 쓰고 위해야 할 FDA가 이익을 위해 제 맡은 본분을 저버렸다는 것이 이 영화의 발단입니다. 덕분에 많은 에이즈 환자들이 엉뚱한 약을 먹고 고통에 시달렸고 밀수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우드루프가 끊임없이 밀수한 약의 효능을 설명하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반항하지만 귓등으로 듣지 않죠. 결국 소송에서 승소하기는 하지만, 판사에게 맡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비단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입안에 모래를 털어 넣은 듯,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죠. 그래서 더 남의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고 재미있게 몰입해서 봤나 봅니다.

이 영화는 우드루프의 투쟁기였습니다. 포인트는 투쟁과 저언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 소수자들을 위해 싸웠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의 변화가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와서 더욱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방탕한 사내가 병에 걸렸고 그로 말미암아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등쳐먹는 정부 기관에 맹렬히 저항하는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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