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는 방탄이다? 브이 포 벤데타(스포일러 주의) 쥴리엣 책방

이번에 포스팅할 내용은 딱히 리뷰는 아니고 번역에 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브이 포 벤데타>라고 그래픽 노블이 하나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토대로 휴고 위빙,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도 있죠.

문학적으로도 그 작품성이 매우 뛰어나서 서구권의 대학교에서는 영문학 전공서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새 학기를 맞이하여 전공서적들을 구입하러 갔다가 이 만화책이 진열되어있는 특이한 광경을 보게 될 수 있다.

핵전쟁 이후 1980~90년대 파시즘 절대정권 하의 영국에서 정권에 맞서는 가면 쓴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브이(V)의 이야기로, 모든 챕터는 알파벳 V로 시작하는 단어들이다. 본작의 내용은 이비 해먼드와 수수께끼의 인물 브이가 만나 1~2년이 지나기까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엔하위키 발췌

언론과 선동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정부와 거기에 저항하는 브이, 브이를 만나고 점점 변해가는 소시민 '이비'의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시공사에서 출판을 했는데 한 군데 번역이 영 마음에 걸리더군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보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주시기 바랍니다.

오른 쪽 칸의 대사 보이십니까?

"아이디어는 방탄이지요."

아이디어를 딱히 번역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방탄이라뇨...이미 많은 분들이 적절한 번역을 내주셔서 저는 딱히 어울리는 번역을 하지 않겠습니다. 참고로 적절한 번역은 "신념은 총알로 뚫을 수 없습니다."입니다.

처음 저 대사를 봤을 때 방탄이라는 말이 굉장히 거슬렸습니다. 원문은 "Ideas are bullet-proof."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틀린 번역은 아니죠. 하지만 훌륭한 번역은 대사 너머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왜 방탄이 계속 맘에 걸리는 걸까 고민한 결과, 그 원인을 알았습니다.

저 상황에서 브이는 상대가 쏜 총에 맞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총에 맞고서도 멀쩡히 서서 저 대사를 읊어줍니다. 즉, 브이가 가지고 있던 이상과 사상, 신념은 총알을 박아 넣는다고 멈춰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이상과 신념이 한낱 폭력에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브이의 생각은 대중들에게 퍼질 것이고 정부가 국민들을 통제하려는 노력은 무위로 끝날겁니다. 짧지만 이 책의 주제를 잘 대변해주는 대사입니다. 그런 것을 문자 그대로 방탄이라고 하니 마치 나는 총을 맞아도 끄떡 없다는 의미로만 읽혀져서 원작이 주는 느낌을 깎아 먹습니다.

아무리 말을 꾸며도 원어가 가지는 분위기와 어조를 백퍼센트 번역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위의 대사도 백퍼센트에 가깝게 번역하다가 나온 실수일 수도 있죠. 많은 번역가 분들이 지금도 시간에 쫓기며 정신없이 번역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 분들의 수고가 언젠가는 콘텐츠를 즐기게 해주는 훌륭한 촉매가 되었으면 합니다.

덧글

  • ㅇㅇ 2019/03/26 01:13 # 삭제 답글

    오히려 번역이 원문의 표현을 망칠까봐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그대로 남겨둔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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