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페미니즘 영화일지도? 쥴리엣 영화관


예고편을 봤을 때 굉장히 기대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제인슨 스타뎀이 망가지는 역할로 나와서 두근두근하며 봤던 영화가 바로 스파이였습니다.

예, 뭐 그냥 그랬어요. 제이슨 스타뎀이 망가지기는 하는데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이라서 재미가 없네요. 예고편에 봤던 허당짓도 예고편이 전부에요. 그냥 여기 나오는 남자 배우들이 크게 하는 역할이 없어요.

오히려 기대도 안했던 주연 멜리사 맥카시에게 눈길이 갑니다. 그래서 페미니즘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어떤 커뮤니티 때문에 타락한 페미니즘이 아니라 진정한 페미니즘 말입니다.


주인공인 쿠퍼는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외모의 여성이지만 CIA에서 요원들의 현장 임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내심 현장 근무를 바라고 있죠. 그러다가 쿠퍼는 자신이 파트너인 짝사랑하는 현장 요원이자 환상의 짝꿍, ‘파인’이 임무 중 순직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CIA 요원들의 신상명세가 담긴 데이터까지 노출되어서 악당들을 추격하는데 많은 애로사항이 꽃피게 됩니다. 이때 쿠퍼는 자신은 내근직이기 때문에 악당들에게 노출될 위험성이 없다는 것을 어필하며 현장 근무에 자원하면서 사건이 전개됩니다.

먼저 제가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생각한 이유는 여자 주인공이 모든 걸 다 해먹는다는 것입니다. 흔히 스파이를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는 덜떨어진 주인공이 주변 인물들의 도움을 받아 우연히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이 공식인데 이 영화는 그런 게 없어요. 오히려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나사 하나가 빠져있고 도움도 안 됩니다. 그리고 반전이 있는데 뚱뚱하고 볼품없는 쿠퍼는 사실 요원 실기 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즉, 격투나 사격술은 일반인을 아득히 뛰어넘는 거죠. 관객들은 쿠퍼의 외모와 하는 일만 보고 편견을 가지고 있다가 어설프지만 멋지게 적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쿠퍼는 자신의 ‘혼자’ 힘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고 사건을 해결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주변 남자들을 너무 멍청하게 묘사해서 완전한 페미니즘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혼자 힘으로 자립에 성공해서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점을 보면 반쪽짜리라도 페미니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또 다른 이유로는 쿠퍼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죄다 여자들의 적이라는 것입니다. 시종일관 여자를 무시하는 남자,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남자, 스스로 약자를 자처함으로써 남자의 보호를 요구하는 여자,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같은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 등등. 그리고 이 자들이 전부 적이 아니라 동료들 중에도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쿠퍼는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말(욕설)로써, 실력으로써 상대를 제압합니다. 특히 극 도중에 자신의 오른주먹과 왼주먹을 메시와 호날두에 비유하며 악당의 보디가드를 협박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메시는 앞으로 들어가고 호날두는 뒤로 들어가 중간에서 만나서 심장이 터질때까지 킥을 먹여주겠다는 참으로 자극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협박을 하죠). 쿠퍼는 이처럼 과격하게 여자의 적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한 명의 요원으로서 훌륭하게 자립합니다.

정말로 감독이 여성들의 자립을 시사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가 멋대로 상상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뚱뚱한 몸을 이끌고 남자들보다 더 몸을 날리며 사건을 해결하는 쿠퍼의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페미니즘의 의미가 변질된 상황에 가볍게 그 의미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덧글

  • 헤지혹 2015/05/26 19:01 # 답글

    맬리사 맥카시와 산드라블록이 나오는 히트도 재밌어요. 코미디지만 페미니즘성에 관해서는, 좀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버디무비라고 해도, 주로 사라(산드라블록)의 성장담으로 이야기가 치중되어 있는데요. 단순히 일 잘하고 당당한 여성뿐이 아닌 제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성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 줴이 2015/05/27 11:48 #

    케이블에서 틀어주던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 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챙겨봐야겠군요. 영화 추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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